가릉빈가

信心銘 7

Kalavinka 2012. 8. 25. 02:13

Layers of Mountains

Layers of Mountains/ Brad Kim

 

 

 

繫念하면 乖眞하야 昏沈이 不好니라

생각에 얽매이면 참됨에 어긋나서
혼침함이 좋지 않느니라.

 

우리가 모든 집착심을 놓아 버리면 대도가 현전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읍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번뇌망상은 그만두고, 대도 중도 부처라는 등의 생각에 조금이라도 생각이 얽매이면 바로 진리와는 어긋나므로,

중도도 깨져 버리고 부처도 죽어 버리게 됩니다.

..................

생각에 얽매여도 병이고, 혼침해도 병이므로, 이 모두를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不好勞神커든 何用疎親가

좋지 않으면 신기를 괴롭히거늘
어찌 성기고 친함을 쓸 건가.

 

 악을 버리고 선을 취하려 하지도 말며, 세간법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취하려고 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이리하여 양변 변견을 버리지도 취하지도 않을 때, 우리가 무상대도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欲趣一乘이어든 勿惡六塵하라

일승으로 나아가고자 하거든
육진을 미워하지 말라.

 

중생이 집착심을 가지면 육진이 되고 눈 밝은 사람이 바로 쓰면 육용(六用)으로서 진여의 대용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육진을 버리고서 어찌 무상대도를 구할 수 있겠느냐고 하는 말입니다.

중생이 집착심을 가지면 육진이 되고 눈 밝은 사람이 바로 쓰면 육용(六用)으로서 진여의 대용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육진을 버리고서 어찌 무상대도를 구할 수 있겠느냐고 하는 말입니다.

 


六塵을 不惡하면 還同正覺이라

육진을 미워하지 않으면
도리어 정각과 동일함이라

 

진여 대용인 육진을 미워하지 않으면 바로 정각(正覺)이라는 말입니다.

육진을 버리고 정각을 성취하려는 사람은 마치 동쪽으로 가려고 하면서 서쪽으로 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육진을 바로 보라는 것입니다.

 


智者는 無爲어늘 愚人은 自縛이로다

지혜로운 이는 함이 없거늘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얽매이도다.

 

지혜있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읍니다. 왜냐하면 대도가 현전하여 버릴래야 버릴 것이 없고 취할래야 취할 것이 없는데,

무슨 할 일이 있겠읍니까? 잘 모르는 사람은 공연히 취하려고 애쓰며 버리려고 고생을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근본 대법을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 취사심에 묶여서 엎어지고 자빠지며 지옥으로 갔다 극락으로 갔다 하며

온갖 전도(顚倒)를 거듭합니다.

그러면 '본래 스스로 함이 없다(本自無爲)'고 하여 손도 꼼짝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고 할는지 모르지만,

이것도 무위법에 떨어진 것이 됩니다.

'함이 없다(無爲)'고 했지만 실제는 함이 없는 것을 찾아 볼수도 없고 중도를 깨쳐도 중도도 찾아볼 수 없는 구경에서 하는 말이지,

'함이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法無異法이어늘 妄自愛着하야

법은 다른 법이 없거늘
망령되이 스스로 애착하여

 

법은 다른 법이 없어서 중생이 생각하고 집착할 특별한 법이 없는데, 공연히 스스로 애착할 뿐이라는 말입니다.

세법을 버리고 불교를 해야겠다, 교학을 버리고 참선을 해야겠다,

반대로 참선하면 무슨 소용있나, 교(敎)나하지 하는 것 등이 모두 애착입니다.

그러므로 쓸데없이 선이니, 교니, 중생이니, 부처니, 마구니니 하는 분별들은 모두 망견인 변견으로서 애착심입니다,

그러니 그 모두를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將心用心하니 豈非大錯가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쓰니
어찌 크게 그릇 됨이 아니랴.

 

'쓸데없이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쓰고 있으니 어찌 크게 잘못됨이 아니겠는가'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알고 보면 우리가 성불하려고 애를 쓰고,

참선하려고 애를 쓰고, 경을 배우려고 애를 쓰는 것

전부가 마치 머리 위에 머리 하나를 더 얹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迷生寂亂이요 悟無好惡어니

미혹하면 고요함과 어지러움이 생기고
깨치면 좋음과 미움이 없거니

 

미혹할 때는 고요함과 혼란함이 생기나 깨치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좋다, 나쁘다 하는 감정은 취사심이므로 미혹할 때는 집착심이 있지만 깨치면 취사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一切二邊은 良由斟酌이로다

모든 상대적인 두 견해는
자못 짐작하기 때문이로다.

 

모든 치우 친 두 가지 견해, 즉 양변을 다 버려야만 무상대도인 일승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우리가 쓸데없는 생각과 계교심을 일으켜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진다는 것입니다.

본래 법에는 양변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마음으로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는 분별을 내는 것을 짐작(斟酌)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짐작인 취사심만 버리면 전체가 현전하여 대도(大道) 아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夢幻空華를 何勞把捉가

꿈속의 허깨비와 헛꽃을
어찌 애써 잡으려 하는가.

 

'꿈속의 허깨비와 헛꽃'은 일체의 변견을 말합니다.

성불하려는 것도 꿈속의 불사(佛事)이니, 성불한다는 것도 중생 제도한다든지 하는 것도 모두 꿈이며 헛꽃이라는 것입니다.

중생이니 부처니 하는 생각과 불법이니 세법이니 하는 것도 다 놓아 버려야 하는데,

왜 이를 잡으려고 애를 쓰느냐 하는 것입니다.

 

 

 

신심명.증도가 강설/ 성철스님 법어집 1집 5권/장경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