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tana

無門關 1

Kalavinka 2012. 7. 9. 22:31

Silent Beauty from Michael Kenna (143 pics)

 

 

 

 

 

 

법(法)은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말합니다.

길을 묻는 사람은 그 길을 따름으로써 진리를 얻게 될 것을 믿고 있습니다.

진리가 이런 식의 구하려는 의도로써 얻어질 수 있는 것일까요?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무상과 무아입니다.

모든 것이 무상한 이 세상에 내 것이 없다는 것이 진리입니다.

이 진리를 우리가 얻을 수 있을까요?

안다는 것과 얻는다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진리에 이르는 길을 닦는 것을 수행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닦는다고 할 때 그 본질은 의식과 사고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수행의식 속에는 무엇을 얻으려는 의도가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진리에 이르는 길이 과연 얻으려는 의식으로 얻어질 수 있을까,

그리고 자신의 업적, 자신의 소유, 자신의 경지를 얻는 것이 진리에 이르는 길인지 물어야 합니다.

우리 주위에서 진리에 이르렀다고 하는 사람중에 막상 그 사는 것을 보면, 때로 오만과 집착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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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은 길을 찾는 우리에게 길을 찾는 자신의 마음을 먼저 보라고 합니다. 

묻는 사람의 마음이 혼란과 갈등 속에 있는 한, 수행은 아상을 일으킬 뿐이니 해탈과는 멀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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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어떤 의도로서 얻을 수 없습니다.

의도를 가진 자는 진리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것을 봅니다.

결정된 답속에는 진리가 들어올 수 없습니다.

단지 그에게는 자신이 설정한 목표(또는 진리)를 얻기 위한 방법이 문제일 뿐입니다.

진리는 자신의 주관이 사라졌을 때 들어옵니다.

이것은 논리적 추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의 의식 속을 들여다 볼 때 의식 스스로 그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선에서는 자신의 악지악각(惡知惡覺), 즉 잘못된 사고와 지식이 가라앉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의도나 지식이 이미 결론을 가지고 있는 폐쇄적 사고임을 자각할때

악지악각을 버리는 행위가 일어납니다. 지식이 실천으로 전환됩니다.

깨달음을 위해 법을 닦는 수행의식의 근저를 바로 볼 것을 이 화두는 요구하고 있습니다.

수행이나 지식을 추구하는 수행자의 사고와 의식상황이 바로 보이지 않는 한, 수행의식은

진리를 구할 수 없는 방법론적 미망 속에 처해있습니다.

 

P32-36

 

 

조주감파(趙州勘婆)편에서...

 

무문관(無門關) 강송/ 無門 혜개 선사 지음/ 김광하 강송/ 운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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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정도에서 정견(正見)을 제일 우선으로 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Michael Kenna 의 사진 작품입니다..

 

 

 

 

당신이 날 두고 떠날 때/千年의 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