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릉빈가

거울에 비친 괘종시계

Kalavinka 2012. 12. 7. 13:50

 



 

 

 

거울에 비친 괘종시계

 

 

 


나, 이번生은 베렸어
다음 세상에선 이렇게 살지 않겠어
이 다음 세상에선 우리 만나지 말자
.......


아내가 나가버린 거실;
거울 앞에서 이렇게 중얼거리는 사나이가 있다 치자
그는 깨우친 사람이다
삶이란 게 본디, 손만 댔다 하면 中古品이지만
그 닳아빠진 품목들을 베끼고 있는 거울 저쪽에서
낡은 괘종시계가 오후 2시를 쳤을 때
그는 깨달은 사람이었다


흔적도 없이 지나갈 것


아내가 말했었다
"당신은 이 세상에 안 어울리는 사람이야
당신, 이 지독한 뜻을 알기나 해?"
괘종시계가 두 번을 쳤을 때
울리는 실내: 그는 이 삶이 담긴 연약한 膜(막)을 또 느꼈다
2미터만 걸어가면 가스 밸브가 있고
2미터만 걸어가도 15층 베란다가 있다


지나가기 전에 흔적을 지울 것


괘종시계가 들어가서 아직도 떨고 있는 거울에 담긴 30여 평의 삶: 지나치게 고요한 거울
아내에게 말했었다: "그래, 내 삶이 내 맘대로 안 돼!"


서가엔 마르크시즘과 관련된 책들이 절반도 넘게
아직도 그대로 있다
석유 스토브 위 주전자는 김을 푹푹 내쉬고

 

 




詩 황 지 우

<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문학과지성사, 1999 >

 

 

 

 

 

 

 

 

 



Tchaikovsky Nocturne No.4, Op 19
Yo-Yo 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