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봄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바람이 불어온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이 온다, 새봄이 온다.
삼라만상이 방금 잠에서 깨어난듯 넘치는 기쁨 안고 눈들을 뜬다.
산은 산뜻이 단장을 하고 개울물은 찰찰 넘쳐흐르고 해님은 얼굴에 홍조를 띤다.
연두색풀 싹이, 파란 풀싹이 땅속에서 뾰족뾰족 고개를 쳐든다.
뜰에도 들에도 온통온통 잔디천지다.
조무래기들은 봄 잔디 위에 앉아도 보고 누워도 보고 뒹굴어도 보며 공도 차고 달음박질도 하고 술래잡기도 한다.
산들산들 부는 바람이 야드르르한 풀잎을 살살 스치며 지나간다.
복숭아나무, 살구나무, 배나무들이 서로서로 뒤질세라 앞을 다투며 꽃을 활짝 피운다.
불같은 빨간 꽃 노을같은 연분홍꽃, 백설같은 하얀꽃, 송이송이 꽃송이에선 달콤한 향기가 풍겨온다.
눈을 감으면 복숭아며 살구며 배들이 벌써 주렁주렁 탐스러이 열린것 같다.
무수한 벌떼들이 꽃을 찾아 붕붕 날아다니고 큰 나비, 작은 나비 분주히 넘나든다.
무연한 봄날의 들판엔 들꽃이 만발하였다.
가기각색 꽃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눈동자처럼, 별처럼 깜박깜박 반짝인다.
"버들가지 스치는 살바람, 차가운줄 모를레라." 참으로 신통한 말이다.
봄바람은 자애로운 어머니의 손길마냥 우리를 정다이 쓰다듬어준다.
갓 갈아번진 논밭의 구수한 흙냄새와 싱그러운 봄풀냄새가 한데 어울려 바람 타고 풍겨온다.
갖가지 꽃향기들이 저으기 습기를 머금은 공기속에서 보글보글 괴고있다.
꽃숲에, 애어린 잎사귀속에 보금자리를 트는 새들은 기쁨을 못이겨 맑은 목청 자랑하며 벗을 부른다.
은방울, 금방울을 굴리는듯한 그 곡조는 산들바람과 흐르는 물에 화답을 한다.
소먹이는 목동들의 피리소리도 온종일 류량하게 울려퍼진다.
제일 흔한것이 비다.
한번 시작하면 사나흘동안 그칠줄을 모른다. 그렇단들 걱정할 것 무엇이랴.
보라, 소털같고 꽃술같고 명주실같은 빗발이 촘촘히, 비스듬히 하늘을 누비며 지붕에 실안개를 포근히 덮어놓는다.
푸르러가는 나무 잎엔 윤기 흐르고 푸르디푸른 잔디는 유난히 돋보인다.
황혼이 깃들자 등불이 켜졌다. 아리송한 불빛이 반짝거리며 고요하고 평화로운 이 밤을 이야기한다.
마을에서, 오솔길에서, 돌다리에서 우산 든 사람들이 천천히 걸어가고 밭에서는 도롱이와 삿갓을 쓴 농민들이 여적 일을 하고있다.
띄엄 띄엄 널려있는 농가들은 비속에서 고요히 주인을 기다린다.
하늘에는 날마다. 연이 늘어가고 들에는 날마다 아이들이 늘어간다.
거리에서, 마을에서, 집집마다에서 남녀노소가 너도나도 앞을 다퉈 떨치고 나온다.
네 활개를 쭉쭉 펴고 기운을 북돋아 저저마다 일을 시작한다.
"한해의 계획은 봄에 달렸다." 방금 첫 출발이다.
시간은 우리를 재촉한다. 희망은 끓어넘친다.
봄은 방금 태어난 갓난애처럼 모든 것이 새롭다.
봄은 바야흐로 자라만 간다.
봄은 처녀애처럼 아릿답기 그지없다.
봄은 바야흐로 방실거리며 걷는다.
봄은 건장한 젊은이처럼 무쇠같은 팔다리를 가졌다.
봄은 바야흐로 우리를 이끌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주 자청
*朱自淸 (1898~ 1948)중국의 현대 산문가·시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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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듯 맑고 투명한 주 자청의 시어가 화폭에서 데구르르 굴러 나온다.
글자로도 노래하고, 그림 그리며, 춤 출 수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낀다.
다만, 매끄럽지 못한 번역이 옥의 티인 것인지..가끔 목에 가시가 걸린듯 문맥의 흐름에서 멈칫 거리게 된다.
또 하나,
선입견으로 인한 잡티가 고운 그림을 흐리게 하는 것일수도..
Lin Hai / Wings of Sil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