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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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사라져버리게 하는 것은 꿈의 헛됨에 대한 깨달음이 아니다.
이상하게도 그 같은 비밀의 감정은 마치 끈질기고 숨막히는 어떤 냄새,
심지어 창문을 활짝 열어젖혀 두어도 가시지 않는 냄새와 같은 것이다.
방탕한 생활에 빠져버린 어떤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의 관심이 끌리는 쪽은 댄스 홀이나 쾌락의 거리가 아니라
어둠이 내릴 무렵 여인들이 옷깃을 스치고 지나가며 나직한 목소리로 유혹의 말을 건네오는
한녘진 골목길들이라는 것이었다....
p82
케르겔렌 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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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은 불가능한 일-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하여 여행한다고 할 수 있다.
예수회 신자들이 육체적 단련을, 불교신자들이 아편을, 화가가 알콜을 사용하듯이, 그럴 경우 여행은 하나의 수단이 된다.
일단 사용하고 나서 목표에 도달하면 높은 곳에 올라가는 데 썼던 사닥다리를 발로 밀어버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는데 성공하고나면
바다위로 배를 타고 여행 할 때의 멀미나던 여러 날과 기차 속에서의 불면같은 것은 잊어버린다.
(자기 자신의 인식이라지만 실은 자기 자신을 초월한 다른 그 무엇의 인식일 것이다.)
그런데 그 <자기 인식 reconnaissance>이란 반드시 여행의 종착역에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그 자기 인식이 이루어지고 나면 여행은 완성 된 것이다.
p97
행운의 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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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들을 생각할 때면 왜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 되는 것일까?
난 바다의 시원한 공기며 사방의 수평선으로 자유스럽게 터진 바다를 섬 말고 어디서 만날 수 있으며
육체적 황홀을 경험하고 살 수 있는 곳이 섬 말고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섬에 가면 <격리된다>--섬의 어원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섬, 혹은 <혼자뿐인> 한 인간, 섬들, 혹은 <혼자씩일 뿐인> 인간들..
p123-124
부활의 섬--주석에서..
그대는 <그것>이다.
항구적이지 않은 것을 통해서 항구적이며 부재 속에 존재하며 공(空) 속에 산재한다.
이해할 필요도 없이 나는 그것을 만져보기만 하면된다.
비록 내가 그것에서 헤어난다 한들 그것을 잊어버릴 수 있겠는가?
아니 과연 이제 내가 그것에서 헤어날 수 있기나 한가?
내게는 그것이 아쉽지만 그것은 나를 아쉬워하지 않는다.
세계는 저절로 주어지는 구경거리이며 나는 그 구경거리의 장면들이 현실이며 그 배우들이 현실임을 믿는다.
세계는 오직 내가 깨어있는 순간에만 제가 부재함을 알린다.
어깨에 기대어오는 머리처럼 존재의 가벼운 움직임.
그러면 어느새 세계는 홀연히 사라지고 그는 세계의 버팀대처럼 나타난다.
그러나 나는 보다 직접적으로 그것과 하나가 될 수는 없을까?
내가 나의 가장 깊숙한 것 위로 기울어지면 나는 존재하기를 그치며 나는 이제 내가 아닌 것이 된다.-그리고 남도 아니다.
나는 <그것>이다.
나의 사고와 나의 욕망들은 그것들을 불러일으키는 그이에 비한다면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잠들면 나는 <그것>에 가까워지고 내가 죽으면 나는 그것과 하나가 되려한다.
나는 돌이 우물 속 깊이 떨어지듯 그의 속으로 떨어진다.
p148-149
상상의 인도--
섬/ 장 그르니에/ 김화영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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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같은 장 그르니에의 섬세한 글을 읽으며 시원한 바람결에 땀을 날려버리듯
얼룩진 마음의 군상들을 하나씩 지워나갈 수 있었다.
특히나 <상상의 인도>에서 장 그르니에의 글 속에서 空 사상을 같이 들여다보며
함께
풍~덩~~
돌이 우물 속 깊이 떨어지듯 그의 속으로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