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릉빈가

지층의 황혼

Kalavinka 2017. 7. 27. 16:02

 

 Olga Abzaeva

 

 

 

 

 

지층의 황혼

 

허연

 

 

어느 날 떠나왔던 길에서 너무 멀리 왔다는 걸 깨달을 때.

모든 게 아득해 보일 때가 있다.

럴 때 삶은 참혹하게 물이 빠져 버린 댐 가장자리 붉은 지층이다.

도저히 기억되지 않으리라 믿었던 것들이 한눈에 드러나는 그 아득함.

 

한때는 뿌리였다가,

한때는 뼈였다가,

 또 한때는 흙이었다가 이제는 지층이 되어 버린 것들.

그것들이 모두 아득하다

 

예쁘장한 계단 어디에선가 사랑을 부풀리기도 했고,

랑이 떠나면 체머리를 흔들기도 했다.

그래도 돌아온다고 믿었던 사랑은 없었다.

떠나면 그뿐, 사랑은 늘 황혼처럼 멀었다.

 

병든 것들은 늘 그랬다.

쉽게 칼날 같았고 쉽게 울었고 쉽게 무너졌다.

이미 병들었는데 또 무엇이 아팠을까.

병든 것들은 죽고 다시 오지 않았다.

병든 것들은 차오르는 물 속에서 죽음 이외에 또 무엇을 알았을까.

다시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마른 날.

떠나온 길들이 아득했던 날 만난 붉은 지층.

왜 나는 떠나 버린 것들이 모두 지층이 된다는 걸 몰랐을까.

 

 

허연/『나쁜 소년이 서 있다』/ 민음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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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한숨섞인 탄식이 배어나오는 것만 같은 마지막 귀절에 발목이 잡혔다.

떠나온 길들이 아득했던 날 만난 붉은 지층.

왜 나는 떠나 버린 것들이 모두 지층이 된다는 걸 몰랐을까.?

누군가 "너무 한이 많아서...."라고 내뱉는 말 속에서 찾은 것은 먹다 남은 뼈다귀..삭이지 못한 뼈조각,,

'평범하다고 자신을 내려놓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어느 분의 글 댓글에

자신을 평범하지않다 여기는 곳에서만 보이는 평범이란 잣대..너무 앞서 나온 것 아니냐며 가시를 밖는다.

그러니 쌓여 보이는 지층은 붉은색일밖에..

해안길을 너무 멀리 걸어왔나보다..

가끔은 내 발밑을 조심스럽게 내려다 볼때도 있다.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을까 전전긍긍해 본 적 있는가?

왜 나는 떠나 버린 것들이 모두 지층이 된다는 걸 몰랐을까.?

내 발자국마저 지층이 되어 버린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Olga Abzae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