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영원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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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고지 엥가딘 실바플라나 호수의 남쪽 호숫가에 있는 쪼개진 바위는 프리드리히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영원회귀 사상을 떠올린 장소다. |
사람들이 삶의 의미와 방향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을 보고서,
니체는 새로운 삶의 철학을 신이란 존재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삶을 살아가는 것에서 찾아냈습니다.
고통과 고난을 겪고서도 삶을 긍정할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을 키우는 것에 의미를 두었던거죠.
니체는 이처럼 사람들의 가치를 완전히 전환시켜버립니다.
근대 이전에 선이라고 하는 것은 신의 뜻대로 하는 것, 신의 말을 거역하지 않는 것이라고 봤다면
니체는 선이라는 것은 인간의 정신력, 힘의 의지를 강화시키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반대로 악이란 인간의 정신력을 약화시키는 것이었죠.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관해서도 근대 이전의 사람들은 신의 은총을 받고 천국에 가는 것을 행복으로 보았다면,
니체는 자신의 힘이 고양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고 봤습니다.
고통, 고난을 극복할 때, 투쟁하면서 자기가 강한 존재가 된다고 느낄 때를 말하는거죠.
...................니체는 강한 힘, 정신력은 자기를 극복하는 데서 나온다고 보았습니다.
니체의 사상 중에 중요한 것은 영원회귀 사상입니다. 문자 그대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 삶보다도 더 좋은 조건을 가지고 태어나길 바라죠. 니체는 그런 식의 희망을 단절시켜버립니다.
영원회귀 사상에서는 천국도 없고 유토피아도 없다고 봅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동안 겪는 갈등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거죠.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면 강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이 달리보입니다.
영원회귀 사상은 운명회귀 사상과도 통합니다. 강한 사람은 험한 운명이 반복되더라도 자신의 인생을 긍정하죠.
초인이란 그러한 사람이라고 니체는 말합니다. 하수나 강물을 끌어들이고서 자기 속성을 잃지 않는 바다처럼,
초인은 궂은 일을 경험하면서도 오히려 그런 것을 자기발전계기로 받아들입니다.
니체와 불교사상 사이에는 내용적으로는 차이가 있지만 구조적으로 유사성이 있습니다.
삶의 고통스런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둘 다 초점을 맞추고 있죠. 근대계몽주의는 구조를 바꾸면서 인간 고통을 극복하려하죠.
니체와 불교는 인간 정신을 변화시킴으로써 고통을 극복하려고 합니다.
세부적으로 보자면 니체는 정신력을 강화시키면서, 불교는 자기집착주의를 버림으로써 고통을 극복합니다.
이처럼 니체와 불교는 고통을 인간정신의 변화를 통해서 극복하려한다는 측면에서 동질성을 획득하고 있습니다.
고통을 바라봄에 있어 니체는 어떤 고통이든 긍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불교는 고통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습니다. 여여하게 바라보라고 하죠....(박 찬국 교수)
-니체와 불교의 공통분모는 '자기극복' 강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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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 |
모든 순간에 존재는 시작한다.
모든 '여기'를 중심으로 '저기'라는 공(球)이 회전한다.
중심은 어디에나 있다.
영원의 오솔길은 굽어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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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철학적 탐구를 멈추지 않고 자기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
사물을 편협하게 바라보고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진 사람을 현명한 사람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