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릉빈가

A Late Quartet

Kalavinka 2013. 8. 25. 21:07

 

 

 

 

 

 

인생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뭔가를 이루어 냈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게 하루 아침에 와르르 무너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깨닫는다. 우리가 지금껏 손 안에 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성취란 무엇인가. 그 성취 뒤에 남는 것은 과연 또 무엇인가. 하여,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현악 4중주단 ‘푸가’의 멤버들은 지금 딱 그런 순간에 놓이게 됐다. 팀 리더이자 오랜 스승인 첼리스트 피터(크리스토퍼 워큰)는 어느 날 자신이 파킨슨 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된다. 지금까지의 생을 정리할 때가 왔다. 그는 멤버들에게 약이 듣는 한 마지막 투어의 오프닝 공연까지만 하고 은퇴하겠다고 말한다. 멤버들은 큰 충격을 받는다. 까칠한 성격의 제1 바이올리니스트 대니얼(마크 아이반니), 제2 바이올리니스트 로버트(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와 비올라 주자인 줄리엣(캐서린 키너) 부부 간에 팀 운영을 놓고 서서히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들은 오랜 친구 관계이자 경쟁 관계였다. 줄리엣은 로버트와 결혼하기 전 대니얼과 연인 관계이기도 했다. 여기에 부부의 딸인 알렉산드라(이모젠 푸츠)가 바이올린 교습 과정에서 대니얼과 사랑에 빠지면서 이 모든 관계가 급격하게 파국을 향해 치닫기 시작한다.

그 동안 잘 감추고 살아 왔던 사람의 욕망은 예기치 못한 일로 비죽 튀어 나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렇게 한번 나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폭발한다. 평온한 척 감춰왔던 모든 관계의 진실이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이윽고 찾아 오는 혼란과 침잠. 어느 것이 진짜이고 그 어느 것이 가짜였는지 아무 것도 알 수 없게 된다. 그간 이루어 왔던 삶이 알고 보면 다 거짓이었을까, 아니면 지금의 혼돈은 일순간일 뿐 우리는 다시 과거의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비상하는 순간이든 추락하는 순간이든 그 모든 과정이 다 온전히 우리 자신의 것이라는 점이다.

 

 

 

 

인물들 중에서 피터의 시한부 삶을 앞두고 가장 헤매는 인간이 로버트다. 그는 피터에게 와병 소식을 들은 후 그의 집을 나오자 마자 이렇게 얘기한다. “이제 더 이상 제2 바이올린을 맡지는 않을 거야.” 그는 자신이 늘 한 발짝 물러선 삶을 살면서 스스로 희생해 왔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가 아니라 이제는 첫 번째로서의 삶을 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멤버들은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다. 심지어 아내인 줄리엣조차 당신은 정말 훌륭한 제2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제1 바이올리니스트 감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녀의 말에 또 다른 충격을 받고 마음이 상한 로버트는 그날 밤 매력적인 여성과 하루 밤을 보낸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줄리엣은 로버트를 용서하지 못한다. 예술은 예술이고 부부는 부부다. 둘은 이상과 현실의 관계를 합치시키는데 결국 실패한다.

로버트가 조금 두드러질 뿐 줄리엣과 대니얼도 개인의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 또한 입 밖으로 잘 내뱉지는 못할지언정 피터의 뒤를 이을 첼리스트를 누구로 해야 하는지, 그럼으로써 자신의 자리를 안정되게 뒷받침해 줄 사람이 누구인지를 고민한다. 겉으로야 물론 4중주단의 지속적인 활동을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속내는 조금 더 복잡하다. 알고 보면 줄리엣은 로버트와의 결혼 역시 안정된 연주생활을 위해서였다. 로버트는 줄리엣에게 자신을 사랑하느냐, 사랑한 적이 있느냐고 말한다. 줄리엣은 대답하지 못한다. 대니얼 역시, 한때 줄리엣을 사랑했지만 그가 진정으로 목숨을 건 것은 음악이었을 뿐이다. 둘 사이에 사랑은 중요하지 않았다.

 

 

 

 

딸 알렉산드라는 그 점이 늘 증오에 가까운 분노였다. 대니얼은 그녀에게 바이올린 연주에 영혼이 깃들어 있지 않다며 엄하게 가르치지만 정작 알렉산드라에게 제대로 된 기교를 가르쳐 준 것은 로버트의 따뜻한 부성이다. 알렉산드라는 줄리엣의 이기적인 예술혼을 질타한다. 그리고 반감 반, 진심 반으로 대니얼을 유혹하고 대니얼은 대니얼 대로 뒤늦게 나마 이 어린 아이로부터 삶에 있어서의 진정한 열정은 바이올린 ‘따위’에서는 결코 찾아지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고 방황한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모든 진상을 알게 된 것은 행복인가 불행인가. 약인가 독인가. 영화는 이 4중주단이 향후 어떻게 될 지에 대해 속시원한 답을 보여주지 않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우리가 단 몇 초의 생을 내다 볼 줄 안다면 이렇게 전전긍긍한 삶을 이어가겠는가. 영화는 우리가 진정으로 획득해야 하는 것은 세상 이치를 나열하는 이성이 아니라 그것을 깨닫는 감성적 인식이며 지식이 아니라 지성이고, 혼자 이루는 것이 아니라 4중주가 됐든 관현악이 됐든, 더불어 이해하고 공감하는 행위를 통해서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과정은 꽤나 눈물을 동반해야 한다. 영화가 보는 사람들을 울컥하게 하고, 살며시 눈물을 흘리게 만들며, 오랫동안 여운을 간직하게 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워큰은 살아있는 전설의 배우다. 노년으로 갈수록 점점 좋아지는 연기자는 그리 많지가 않다. 워큰은 분명 그런 배우다.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은 연기 면에서는 광인이다. 책상에 앉아 홀로 눈을 감고 있는 단 한 컷의 장면만으로도 무게감을 줄 수 있는 배우란 역시 그리 많지 않다. 캐서린 키너는 두말 할 것 없이 가장 지적인 연기자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마크 아이반니는 새로운 발견이다. 영국 출신의 이모젠 푸츠는 앞으로 대성할 신성이다. <마지막 4중주>는 캐스팅 라인 업만으로도 무조건 봐야 할 작품이다.

데이빗 린치의 음악적 얼터 에고인 안젤라 바달라멘티가 영화음악을 담당했다. 세계적 메조 소프라노인 안네 소피 폰 오터와 역시 유명 첼리스트인 니나 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영화 전편에 흐르는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4번은 클래식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새로운 인생의 진리를 깨닫게 할 것이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마지막 삶을 연주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4중주단 정도쯤과는 함께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마지막 4중주>는 고통스럽긴 해도 끝까지 희망적이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가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를 각성하게 하는 영화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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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은
아마 모두의 시간에 존재하고
미래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에 포함된다.
--T.S. Eliot 사중주 중에서

 

 

영화 속에서 연주한
베토벤, 현악사중주14번 C sharp 단조 op131은
베토벤이 말년에 작곡한곡으로
4악장이 아닌 7악장으로 되어있다
또 7악장을 연속해서 연주하라고 했다 한다
영화 속에서도 첼로 연주자인 피터교수는
학생들에게 pause 나 tuning 없이 연주할 것을 말한다.
인생도 쉼표없이 쉬지않고 달려가며
조율없이 선택하는 것임을 말하려는 것일까?



영화 포스터에 적힌 문장이 이 영화를 말해준다.
No arrangement...is more beautiful...
or more complicated.

 

 

 

 

 

 

 

Beethoven - String Quartet op. 131 - Last 2 move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