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avinka
2014. 5. 28. 23:25

*달팽이가 자신의 집을 메고 다니듯 자기도 자신의 삶의 방식을 휴대하고 다닌다는 생각을 하며 행복을 느꼈다.
진중하게 내린 결정은 운명의 목소리와 결부되었다. 무거움, 필연성 그리고 가치는 내면적으로 연결된 세 개념이다. 필연적인 것만이 진중한 것이고, 묵직한 것만이 가치있는 것이다.
우리 생각에는 인간을 위대하게 하는 것은 아틀라스가 그의 어깨에 하늘의 천정을 메고 있듯 인간도 자신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베토벤의 영웅은 형이상학적인 무게를 들어올리는 역도 선수이다.
우연만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로 보여졌다.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것, 기다려왔던 것, 매일 반복되는 것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
집시들이 커피잔 바닥에서 커피 가루가 그린 형상을 통해 의미를 읽듯이, 우리는 우연의 의미를 해독하려고 애쓴다. 우연은 필연성과는 달리 이런 주술적 힘을 지닌다.
하나의 사랑이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는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에 새들이 모여 앉듯 여러 우연이 합쳐져야만 한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 하나의 지옥을 만들었다. 그들이 사랑한 것은 사실이며, 이것은 잘못이 아니라 그들의 공존불가능성에 기인한다는 것을 통해 증명되었다.
현기증을 느낀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허약함에 도취되는 것이라고 나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허약함을 의식하고 그것에 저항하기 보다는 투항하고 싶은것이다. 자신의 허약함에 취해 더욱 허약해지고 싶어하며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백주대로에서 쓰러지고 땅바닥에, 땅바닥보다 더 낮게 가라앉고 싶은 것이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선의와 자비에 자신을 내던지고 싶다는 욕구였다. 마치 포로가 되려면 먼저 자신의 모든 무기를 내던져야 하는 군인처럼 타인에게 자신을 방기하고자 하는 욕구, 그리고 아무런 방어 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그는 언제 공격을 당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젊은 시절 삶의 악보는 첫 소절에 불과해서 사람들은 그것을 함께 작곡하고
모티프를 교환할 수도 있지만, 보다 원숙한 나이에 만난 사람들의 악보는
어느 정도 완료되어서 하나하나의 단어나 물건은 각자의 악보에서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게 마련이다.
밀란 쿤데라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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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시선은 잔인한 손처럼 얼굴에 놓여있다. 그러면서 화가의 시선은 그 얼굴의 본질, 즉 그 내면의 깊숙한 곳에 놓여 숨어있는 다이아몬드를 소유하려고 애쓰고 있다. 물론 그 깊은 내면이 정말로 뭔가를 숨기고 있는지 아닌지를 우리는 확인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것은 어떻더라도 상관없다. 우리 모두에게는 잔인한 몸동작, 즉 손놀림이 있다. 타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타인의 가슴속에 혹은 그 깊은 곳에 숨어있는 무엇인가를 발견해내려는 손놀림이 말이다.
Francis Bacon(1906~1992)의 화집에 실린 밀란 쿤데라의 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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