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我??

가릉빈가 2014. 8. 26.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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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의 삶은 역설적으로 진아(眞我)의 삶이기도 합니다.
 내 눈의 들보가 사라져가면서
비로소 무아의 삶, 진아의 삶입니다.
 누구나 정도의 차이일 뿐
이기적 자기(ego)라는 들보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여 자주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명상 수행이 필요합니다.
 때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바라봐야
공동체 전체 안에서 자기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수도원 배경의 산을 가리며
균형과 조화를 깨고 있는
흉물스런 두 높고 큰 건물을 보며 떠오른 생각입니다.
 배경의 산이나 주변 환경에 전혀 어울리지 않아
눈에 거슬리는 모습에
‘아, 공동체의 경우에도 배경인 공동체를,
  하느님을 가리는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동체와 전혀 어울리지 않게 혼자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경우입니다.
 체구가 커서가 아닌 자기중심의 들보가 클수록
공동체의 균형과 조화를 깨는 삶입니다.
 
자기 고유의 개성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이기적 자기(ego)를 말하는 것입니다.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 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때로 ‘너나 잘해라.’ 라는 거친 질책을 듣기도 할 것입니다.
 제 눈 속에 들보가 있는 한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기 십중팔구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것이 자기를 아는 일이요
대부분 사람들은 가장 가까이 있는 제 눈에 들보를 보지 못합니다.
 진정 지혜로운 사람들은
제 눈 속의 들보를 보는, 자기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를 알아가는 지혜와 겸손이 있을 때
점차 사라져가는 제 눈의 들보인 이기적 자기(ego)입니다.
 

이기적 자기의 들보가 사라져갈 때
그리스도의 맑은 눈으로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볼 수 있어,
비로소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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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불교를 믿는 사람의 관점은
이미 붓다인 자신의 깨어있음으로..
거리를 두고 감정에 몰입되지 않는 객관성을 가진다면,
경계밖의 세계에 휘말려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을텐데,,
나아가,, 
들여다보면서 그것마저 '공'함을 안다면?
 
마음에서 일어나는 뜬구름같은 망상이
망상임을 알고,
일어나는대로,
사라지는대로,
끄달려 가지 않는 것이 수행이 아닐까?

 

 

 

 
 

 

 

Nancy / Leonard Co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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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lavin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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