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이리저리 밀려 있던 글감숙제들을 말끔히 마감했다.
밑그림을 그리고, 자료를 모으고, 글을 묶는 작업들이 모두 만만하지 않다.
글을 한편 써내는 작업은 살을 저며내는 것 같다. 육즙을 짜고, 땀구멍 사이로 줄줄 피가 새어나오는 인고의 과정.
올해 말까지 한권의 분량을 묶기 위해 얼마나 이런 작업을 계속해야 하는지, 펜을 내려놓는 그 순간에 항상 내뱉는 말.
미친 짓이야. 미친 짓! 글쓰는 것은 정말 미친 짓이야!!
결국 이런 갈등이 오락가락 하는만큼 정작 옷을 입히고나면 가슴이 뿌듯도 할까?
목표점을 향해 전력질주하기보다 천천히 즐기면서 한걸음씩 걷기로 작정을 했으니,
설렁설렁 해보고, 못가도 괜찮고, 안가도 괜찮고, 다 해도 괜찮은..그런 마음으로 하자.
어제 내린 비와 바람으로 여린 분홍잎들이 모두 길 가에 꽃비되어 흩어지고,
파릇한 새순이 싱그럽게 얼굴을 내민다.
때늦은 花み 나서는 발걸음이 종종거리게 생겼다.
너무 완벽해지려 말 것! 에너지가 닿는만큼만 움직이고, 스트레스 받지 말 것!
마음의 흐름을 놓치지 말 것!
우선 순위는 있는 법이니,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나씩 하자.
빗소리와 운무에 잠긴 산사의 풍경소리, 시원한 계곡물 소리.
기운 좋은 곳에 있다면서 정작 모두 신선은 되지 못하는지, 말꼬리를 잡는 일로 차 맛이 떨어진다.
내려놓기와 설렁거리기. 힘빼기, 침묵하기..
참회하기의 진정한 의미를 새기며 시비분별을 지운다.
페르소나의 작업이 새롭게 시작되었다.
20호에 밑그림으로 그려진 모습이 마음에 들어 대문으로 걸었다.
물속을 들여다보고 제 얼굴에 반해버리는 나르키소스처럼,
한참을 취한듯 몽롱하게 빠져 들겠다.
문득 조실스님의 얼굴 잃은 사나이 법문이 생각난다.
자기 얼굴을 볼 수 없어 제 얼굴을 잃어버렸다 여긴 한 사람이 평생을 집밖을 돌아다니며
허송세월하다 지쳐 집으로 돌아와 마주한 아들녀석의 한 마디. "아버지 어디갔다 이제와?"
그 남자는 얼굴을 잃었습니까?
얼굴이 없었던 것입니까?
......................
일평생 자기를 찾아 헤매는 깨달음의 길을 간단하고 쉽게 전해주신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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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간화선과 수식관의 우열을 따지는 사람들 말에,
단지 우리를 위해 베푸시는 것일뿐이라고 짧고 강하게 한마디만 했다.
원래 처음엔 나도 그런 의문이 들었으니까, 아는 것만, 경험한 일들만 입에 올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