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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보제루 안에 양익스님의 영정이 모셔졌다. |
한평생 수행 포교 불사에 매진 꺼지지 않는 등불로 영원히 남아
“좌탈입망으로 평소 가르침을 보여주신 양익 스님! 이것이 스님의 마지막 무상법문이신가요!”
스님의 원적에 하늘도 애도하듯 법비가 내리던 5월 10일 오전 10시 30분. 범어사 보제루와 대웅전 앞 마당에 사부대중 4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청호당 양익 대선사(세수 73 ·법랍 45)의 영결식이 봉행됐다.
영결식을 알리는 5번의 명종 소리는 빗줄기를 타고 청아하게 울려 퍼져 애도하는 신도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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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보제루에서 열린 영결식에 참석한 스님들. |
이날 참석한 청화 스님(조계종 교육원장)은 영결사를 통해 “스님께서 이루신 적멸의 분상에 어찌 오고감이 있고, 시종이 있을 수 있으며, 생사의 출몰이 있겠습니까? 다만 무상법계에 태어나서 우리와 같이 사바에 머무신 것은 상사자재한 법신의 묘용을 보이신 것입니다”고 낭독했다.
스님은 또 “이제 예토의 수고로운 연을 거두시고 대적삼매 속에 대자유·대해탈의 법락을 여유로이 누리소서”라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지유 스님(범어사 조실)은 “이 생애 태어나 결국은 생로병사. 죽은 후 도대체 어디로 가는가. 마음 자체는 오고 가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렇게 보일 뿐”이라며 삶과 죽음 그리고 마음에 관한 법어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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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을 뚫고 장의행렬이 이어졌다. |
대성 스님(범어사 주지)은 추도사를 통해 “40여 년을 두 날개를 펼쳐 저 허공을 비상하시더니 날개를 고요히 접으시고 적멸을 보이신 것은 열반적정의 참모습을 시현하신 것”이라며 “누구보다 천진무구한 도인이셨고 꾸밈없이 소탈하시어 큰 선지식이면서 티를 내지 않으셨으니, 누가 스님을 애도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흐느꼈다.
이어 사부대중의 조사가 시작됐다. 흥교 스님(범어사 금강계단 전계대화상)과 반월 스님(연등사 주지)은 “양익 스님! 우리 문도들은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스님의 삶을 자신을 돌아보는 고경으로 삶을 것입니다”며 스님의 원적을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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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여명의 신도들이 다비장을 향하고 있다. |
특히 박정현 범어사 신도회장의 조사가 이어질 때 대웅전 앞마당의 신도들의 눈에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박 회장은 “세속 인연 36년 동안 내게는 형님이자 아버지요, 큰 스승이셨던 당신의 일생을 정식 상주도 아니요, 상주 아님도 아닌 반상주로 빈소의 끄트머리에 앉아 뒤돌아보게 됩니다”라고 말한 뒤 터지는 울음을 참지 못해 말을 잊지 못했다. 잠시 후 울먹이는 목소리는 다시 이어졌다. “상중에 당신의 상좌 스님들끼리 장례비용 염출하면서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통장 잔고에 300만원. 돈은 생기는 대로 모두 불사에 부으시고 남기신 재산은 전혀 없대요. 한국과 세계 90여 곳에 개설된 ‘불교금강영관’을 원류로 하는 수많은 수행 제자들의 가슴속에 깊이 남아 당신의 가르침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될 것입니다”고 밝혔다.
범어사 합창단의 ‘왕생극락’ 조가가 흐른 뒤 일주문에서 금정산 다비장까지 장의행렬이 이어졌다.
하늘을 향해 뻗어나간 수백 개의 만장기들이 흰색 비옷을 입은 신도들의 손에 지탱되어 장의행렬을 인도했다. ‘나무아미타불∼!’ 정근소리는 쉴 새 없이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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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타고 있는 연화대 모습. |
다비장이 있는 산의 언덕길은 비에 젖어 온통 진흙으로 변해 미끄러지기 일쑤였는데도 사부대중의 장의 행렬은 스님의 극락왕생길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일주문에서 1시간 여의 시간이 흐르자 다비장에 다다랐고 연화대 주위는 사람들로 둥그렇게 에워싸였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순간 신도들의 눈에는 또 한번의 애도의 물결이 출렁거렸다. 하늘도 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듯 법비를 멈추었다. 붉은 불길이 일더니 연화대는 금새 타버리고 검은 재가 하늘을 수 놓았다. 다비식이 끝나자 다비장 주변에 신도들의 나무아미타불 정근이 이어졌고 흰 연기가 피어오르자 ‘반야심경’ 봉독이 다비장에 울려퍼졌다.
부산 범어사 = 유남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