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가릉빈가 2012. 9. 16. 20:57

 

Untitled, Artwork by Katsunori Yamaguchi. Untitled, Artwork by Katsunori Yamaguchi. Image #364174

Katsunori Yamaguchi

 

 

 

 

슬픔으로 가는 길

 

 

정호승


내 진실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낯선 새 한 마리 길 끝으로 사라지고
길가에 핀 풀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데
내 진실로 슬픔을 어루만지는 사람으로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슬픔으로 걸어가는 들길을 걸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하나
슬픔을 앞세우고 내 앞을 지나가고
어디선가 갈나무 지는 잎새 하나
슬픔을 버리고 나를 따른다.

내 진실로 슬픔으로 가는 길을 걷는 사람으로
끝없이 걸어가다 뒤돌아보면
인생을 내려놓고 사람들이 저녁놀에 파묻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하나 만나기 위해
나는 다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

 

 

*허리에 긴 줄을 묶고 밖으로 뛰쳐나가려 발버둥치던 댄서의 몸부림을 보곤 왜 그렇게 눈물이 났을까?

그저 무심히 한줄 바람처럼, 턱 내려놓듯 추임새를 잡는 판소리 첫음절에 왜 주르륵 눈물이 흘렀을까?

..............................................

밖엔 종일 강한 비바람이 몰아친다.

한 주를 바쁘게 숨을 몰아가며 맴을 돌다가, 주말마저 겹치기 약속으로 분주했던 마음을

선방에서 잠시 멈추고 내려놓는 숨결따라 깊이 파고드는 귀뚜라미 소리. 그리고 바람소리. 비소리..

 

퓨전 판소리를 봤다. 사천가..

전통 판소리와 연극이 합쳐진 일인극 같은 두시간을 넘게 한 사람이 완창을 하는 판소리 마당. 

구라파의 작가가 쓴 희곡을 창으로 표현한 판소리 한 마당과의 조우는 내겐 새로운 경험이었다.

관객이 판소리엔 익숙하지 않은지 추임새를 넣을줄도 모르는 어색함이 공연장을 가득 메우긴 했지만,

나름 혼자 음률과 리듬에 몸과 마음을 실어 흥겨웠다.

알 수 없는 것은..

슬픔을 표현하는 노래도 아닌 그저 내뿜듯이 토해내는 소리꾼의 소리 한 자락이 무심코 눈물샘을 자극한다.

 

 

서랍을 하나씩 열고보니,

쌓아둔 것이나 없애버린 것이나,

그 흔적은 고스란히 부피를 남겨두고 있다.

행복, 사랑, 배신, 미움, 상처...

그 모든 것이 과연 있었기나 했었던지

가물거리는 기억너머 알갱이가 남겨놓고 간 껍질들은

허물되어 서랍에 차곡히 채워져 있지만,

정말..

그 알갱이란 것이 있었던지,

흔적이란 것이 있는 것인지,

서랍조차 있는 것인지,

난..

알 수 없다.

 

 

 

 

 

 

 

Untitled, photography by Katsunori Yamaguchi. HasselBlad 2000FC/M / 110mm F2 / TMAX100. In People, Body part. Untitled, photography by Katsunori Yamaguchi. Image #373254

 

 


Mickey Newbury - Bless Us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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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alavin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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