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red of Life , 1892 (Neue Pinakothek, Munich)
Ferdinand Hodler, The Disillusioned Souls,1982
Eurythmie (Ferdinand Hodler, 1895)
Ferdinand Hodler,Adoration III.
Ferdinand Hodler: The Chosen One, 189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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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뮌헨의 노이에 피나코텍(Neue Pinakothek)에서 본 그림, Ferdinand Hodler의 Tired of Life...
그림 앞에 서면 깊이 주름진 그늘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그곳에서 사온 화집을 뒤적이다 이 그림을 우연히 다시 마주하고, 화가에 대한 호기심으로 여러 사이트를 뒤졌다.
죽음의 냄새가 진하게 와 닿는.. 공포와 슬픔, 불안, 허무, 고달픔...
현란한 언어 유희보다 단숨에 들어오는 강렬한 느낌이 그대로 한 눈에 와 밖히는 느낌이다.
놀랍게도 이 화가의 나무들은 쉴레의 메마르고 뒤틀린 모습과 닮아 있고,
밤과 낮의 소재로 그려진 엉킨 남, 녀의 모습은 코코슈카의 질감도 묻어져 나온다.
인생의 춥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오다 Adoration을 통해,
The Chosen One...구원을 받고..
다양한 손 모습으로 표현하고자 한 의미는 무엇일까?
블레이크의 천상과 지옥을 오가는 강한 느낌의 그림을 보는듯,
한동안 감전되어 한 편의 인생 드라마를 파노라마로 한 숨에 다 본 느낌이다.
Eurythmie..죽음으로 다가가는 한 발자국, 한 발자국도 모두 하나의 율동의 연장인지..
그들의 닮은 꼴 그림들 속에서 입고 있는 수도사복장의 색감만으로도 그 비탄스러움이 노출되는 것 같다.
사람의 마지막 순간에도 아마..이처럼 지난 삶의 모든 잔영이 휘리릭~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간다지?
화면 중앙의 보여지는 수도사 복장 사람들의 비탄스러움보다
등 뒤에 비켜나 배경이 되는 유난히 메마르고, 헐벗은 나무 그림들이
마치 이 화가의 속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꿈꾸고 소망한 것은,
작은 나무 한 그루 다.시. 심는 그 희망이 아니었을까?
또 하나,
의식화된 사고의 표현은 손의 모습으로 재현되는지,
에곤 쉴레의 갈라진 두 손가락(강한 자존감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이는),
땅을 향해 구부정한 모습으로 두손을 모은 Hodler의 손(겸손을 나타내는 듯).
하늘을 향해 가지런히 두손 모은 Albrecht Durer 의 기도하는 손(공경와 헌신을 약속하는 것 같은 복종)..
작은 움직임, 시선, 몸짓, 발짓, 손짓, 하나하나에도 그 의미가 읽힌다던 피나의 얘기가 다시 떠오른다.
인도의 박물관에서 오래전 붓다의 형상을 마주했을때,
그 온화한 미소와 낯선 이방인의 모습에 매료되기보다 구부린 손가락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했었던 내겐,
그림 속에서 유난히 손 동작의 의미가 하나의 의문점으로 다가온다.
세상을 자신이 보고싶은대로 이해하듯,
그림은 내 마음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 되어 읽히는 타자의 타자를 비추고 있다.